성명학에서 이름의 근본인 「소리ㆍ뜻ㆍ글자」 의 의미(이치)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이름은 이름의 본질인 「뜻」 과 그 「뜻」 을 나타내는 「소리」 와 「글자」 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리ㆍ뜻ㆍ글자」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이름이 이름으로써 존재할 수 없으니 이는 이름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근본(根本)으로 이름에 있어서 삼위일체에 해당한다.
모든 것의 본질인 「뜻」 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리」 와 「글자」 가 나왔듯이 「획수(숫자)」 는 「글자」 에 의해서 생겨났고 정해진 것으로 「글자」 가 없이는 「획수」 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 중요성에 비해 간과하여 놓치고 있었던 부분은 「글자」 의 존재의미는 획수가 아니라 이름의 본질인 「뜻」 의 소중한 의미(기운)가 담겨지는 그릇으로서의 「글자의 기운」 에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글자」 는 바로 우리가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는 몸(육체)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름의 근본 중 하나인 글자, 그것도 글자의 기운이 아닌 글자의 획수에 의해서 발생되는 단순한 셈수로서의 숫자의 의미가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는 사격수리(四格數理)로 둔갑(?)되면서 한국의 성명학은 근본(根本)이 꼬여버렸다.
즉 성명(姓名) 삼자(三字)의 세 가지 「글자」 획수(숫자)를 가지고 중복이 되지 않게 각기 더한 결과 발생하는 '네 가지 숫자'인 사격수리(四格數理)가 마치 이름의 근본 인양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본말(本末)이 전도(顚倒)가 되어 이름의 뜻(혼)도 없는 이름이 지천으로 지어지는 기형적인 작명풍토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작명계의 풍토는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가 수리(數理)로 이루어져 있다」 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모든 이치가 수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성(眞理性)을 내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수한 그물망으로 짜여져 있으면서 서로 상응(相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道) 즉 진리(眞理)의 속성(屬性)으로 보자면, 사랑으로 모든 것을 보면 사랑 천지요 미움으로 보면 미움 천지요 감사로 보면 감사 천지요 원망으로 보면 원망 천지이다.
삼라만상이 수리로 이루어졌다는 한 가지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본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떠올릴 법하다.
하나님과 부처님의 존재는? 음양오행과 십간십이지는 왜 있으며 필요한가?
음양오행과 십간십이지가 없다면 역학과 성명학도 존재할 수가 없는데?
수리만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있다면 사람의 이름도 「수리」 만으로 (짓고 사용이) 가능해야 하며, 그렇게 된다면 「소리ㆍ뜻ㆍ글자」 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ㆍ뜻ㆍ글자」 없이는 이름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리ㆍ뜻ㆍ글자」 의 의미를 말(末)로 보고 「수리」 의 의미를 본(本)으로 보고 있다면 이야말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길 떠났지만 아직도 행복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절대적 근거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일종의 추론에 불과한 사격수리라는 마법(?)으로 홀려도 여전히 이름의 본질인「뜻」의 의미(기운)가 담겨지는 그릇으로서의「글자」가 없다면 획수는 전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에 매여 있는(?) 획수가 - 글자에 매여 있다는 의미는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얘기 – 사격수리로 변신(?)하면서 글자뿐만 아니라 소리와 뜻의 의미(기운)까지도 무시할 정도로 최강 실세가 되었다고? 도대체 그 권한을 누가 줬으며, 사격수리를 도출해내는 조합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추론(推論)일 뿐 절대적인 근거를 입증할 수는 없다고?
세상천지에 이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아닌가? 획수가 뭐라고?
글자가 없으면 나올 수도 없는 것이!
수리(數理) 이전에 뜻이 먼저 있었으며, 뜻이 곧 말씀이요, 말씀이 화(化)한 것이 곧 삼라만상(森羅萬象)이며, 삼라만상에 속한 모든 존재의 의미를 압축하여 간단 극명하게 나타내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글자이다.
따라서 이름 그 자체인 이름의 소리, 뜻, 자형에서 강력하게 좋은 기운이 작용한다면 흉수리(凶數理)는 이에 종속(從屬)되고 동화(同化)ㆍ흡수(吸收)되어 버리므로 그 의미를 상실(喪失)하게 되니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숫자 비위(?) 맞추느라 즉 수리길흉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이름의「뜻」마저 포기해버려 혼(정신)이 없는 이름이 지천이 된 이 작명풍토가 과연 정상일 수가 있을까?
따라서 근본을 무시한 지나친 수리 놀음(?)으로 본말이 전도된 기형적인 작명풍토는 근본에 충실한 작명풍토로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자의 획수(劃數)를 원획(原劃)으로 보느냐 아니면 필획(筆劃)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획수가 달라지게 되며, 따라서 사격수리도 달라지게 된다.
이는 마치 사격수리를 도출해내는 조합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근거를 입증할 수 없듯이 획수 산정의 기준도 – 뜻글자이므로 필자는 원획으로 보지만 – 어느 기준이 절대적으로 맞고 옳다고 분명하게 판단할 수가 없는 경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꼭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지는 수리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그러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이름 두 자의 글자 획수를 서로 더한 숫자 정도 즉 이름의 획수만을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기존의 사격수리에서 이름의 획수를 더한 수리만 고려하면 되므로 그만큼 수리길흉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그만큼 이름의 근본(소리ㆍ뜻ㆍ글자)에 충실한 건강한 작명풍토가 조성될 수 있다.
사실 한국, 일본, 대만에서 성행해온 수리작명법은 성명의 획수조합에서 나온 숫자들을 고정된 81수 이론에 의해서 간단하게 파악하여 쉽게 길흉을 판단해왔다.
그런데 채침의 홍범81수 이론이든 구마사키 겐오의 81수 이론이든 두 사람이 언급한 81개의 숫자의 의미가 오류가 전혀 없는 완전한 이론이란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두 사람의 81수 중에서 27개의 길흉이 상반된다는 점 자체가 벌써 완전함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채침의 81수는 수리성명학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론이었다.)
또 두 이론 다 제대로 입증된 바도 없었는데, 이를 마치 신앙인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보는 불경이나 성경처럼 대한다고 생각해 보라! 더구나 신앙인도 아닌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처럼 절대적 신뢰를 가질 만한 근거도 없고 입증도 안 된 이론을 그동안 사람의 일생 중 시기 별로(초년,장년,중년,말년) 운명처럼 작용하는 듯이 믿고 숫자풀이를 해온 잘못된 작명풍토는 이제라도 변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일반인이 이런 내막을 안다면 81수 이론에 얼마만큼 의미부여를 하겠는가?
물론 작명책마다 그리고 여기저기 상담소에서 이구동성으로 길흉을 되풀이 반복하는 그런 환경이 사라진 다음을 전제로 한다면... 아마 제로(0)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작명 상담을 하는 곳이라면 소수의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수리길흉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 수리길흉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불용문자는 얼마나 불길한지에 대한 정보를 아주 쉽게 접하게 된다. 반면 그와 상반된 정보를 접할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리길흉과 불용문자의 부정적이고 왜곡된 정보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란 사실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격 수리길흉에 길들여져 온 – 전문성과 연륜 없이도 감명과 작명을 쉽게 할 수 있었던 - 작명풍토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므로 금방 커다란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뜻(혼)이 살아있는 근본에 충실한 제대로 된 이름을 생각하고 바라는 작명가들과 작명의뢰자들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하여 변화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